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은
한 권만 읽고 끝내기 어렵습니다.
소재는 매번 달라지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퀸의 대각선》은
체스를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체스보다 더 크게 남는 건
두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혼자 강해지고 싶은 사람.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
이 책은 그 두 방향이
끝까지 부딪히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장에 꽂힌 베르베르 책들을 보면
괜히 한 시절이 떠오릅니다.
《개미》부터 이어지는
그 특유의 상상력.
가끔은 과하지만,
그래도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1권과 2권 표지가 나란히 놓이니
이 책의 분위기가 더 잘 보였습니다.
흰색과 검은색.
마주 보는 얼굴.
체스판 위의 두 방향.
니콜과 모니카의 관계도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베르베르는 늘
인간을 조금 이상한 각도에서 봅니다.
이번에는 체스판 위에
개인과 집단을 올려놓았습니다.
모든 장면이 자연스러웠던 건 아니지만,
그 과한 설정 안에
묘하게 현실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왜
가만히 있지 못할까요.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완전히 혼자 있지는 못하고,
사람이 싫다면서도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 문장은
니콜과 모니카를 함께 설명하는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체스는 혼자 둘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 한 수가 생깁니다.

언어의 빈곤화에 대한 문장은
밑줄을 긋고 지나가게 됐습니다.
짧게 말하고,
짧게 보고,
짧게 반응하는 일에 익숙해진 요즘.
말이 단순해지면
생각도 같이 납작해질 수 있다는 말이
꽤 오래 남았습니다.

익숙한 인간을 낯선 판 위에 올려놓습니다.
개미의 세계,
죽음의 세계,
꿈과 기억의 세계.
이번에는 체스였습니다.
그 방식이 가끔은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베르베르다운 재미가 있습니다.

헌사 페이지가 좋았습니다.
최고의 체스 상대가 되어준 친구에게.
이 문장을 보고 나니
니콜과 모니카의 관계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적이지만,
동시에 나를 가장 많이 움직이게 하는 사람.
그런 상대가 있습니다.

최악의 적이
최고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
이 책 전체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었습니다.
니콜과 모니카는
서로를 무너뜨리려 하지만,
결국 서로 때문에 더 선명해집니다.
경쟁은 때로
상대를 이기는 일이 아니라
나를 드러내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목차만 봐도
게임이 시작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영악한 두 아이.
애벌레.
질풍노도.
니그레도.
두 사람의 결핍이
어떻게 전략이 되고,
그 전략이 어떻게 삶의 방식이 되는지
이야기는 천천히 보여줍니다.

2권으로 넘어가며
이야기는 더 커집니다.
개인적인 대결은
정치와 전쟁, 세계의 문제까지 이어집니다.
솔직히 조금 과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면
질문 하나는 남습니다.
나는 혼자 강해지고 싶은 사람인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고 믿는 사람인가.
《퀸의 대각선》은
체스 소설처럼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람의 방향을 묻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베르베르답게 크고,
조금 과하고,
그래도 끝까지 읽게 되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