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제목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라면을 끓이며》
라면이라는 단어가 주는
소박하고 편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 책은 라면 이야기에만 머무는 책이 아니었습니다.
밥, 돈, 몸, 길, 글.
사람이 먹고, 벌고, 견디고, 걷고,
끝내 무언가를 쓰며 살아가는 이야기였습니다.
문장이 어렵다기보다
문장 뒤에 있는 것들이 무거웠습니다.

표지는 조용합니다.
작은 얼굴 그림 하나와
담백한 제목만 있습니다.
하지만 책 안으로 들어가면
그 조용함이 조금 다르게 느껴집니다.
김훈은 크게 위로하지도 않고,
감정을 세게 밀어붙이지도 않습니다.
그냥 낮은 목소리로
먹고 사는 일에 대해 씁니다.
그게 오히려 오래 남았습니다.


차례의 첫 제목은 밥입니다.
라면, 밥, 바다, 목숨 같은 단어들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습니다.
처음엔 이상했지만
읽다 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먹는 일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돌아오는 일입니다.
한 끼를 먹었다고 끝나지 않고,
내일도 또 먹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 밥은 음식이면서
살아내야 하는 반복처럼 느껴졌습니다.

2부는 돈,
3부는 몸으로 이어집니다.
둘 다 너무 현실적인 단어입니다.
돈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몸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김훈은 이런 이야기를
크게 말하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적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차분함 때문에
더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바다의 기별’은
오래 머문 부분이었습니다.
사라진 것,
돌아오지 않는 것,
붙잡을 수 없는 것들.
말로 완전히 데려올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번 불러보는 일.
김훈의 문장은 그런 조용한 호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손으로 만져보려는 느낌이었습니다.



작가의 말 마지막 부분도 좋았습니다.
낮고 순한 말로
세상에 말을 걸고 싶다는 마음.
이 문장이 책 전체와
잘 어울렸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멋진 문장을 남기는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내가 내보낸 말이 어디까지 갈지
생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라면보다
말과 삶에 대해 더 오래 생각하게 했습니다.
《라면을 끓이며》는
읽기 편한 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계속 멈춰서 읽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밥은 계속 돌아오고,
돈은 삶을 밀어붙이고,
몸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말은 한번 나가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이 책을 읽고
라면이 특별해진 건 아닙니다.
다만 라면을 끓이는 몇 분이
아주 가벼운 시간만은 아니게 됐습니다.
물이 끓고,
면이 풀리고,
한 끼가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훈은 그 당연한 일을
조용히 다시 보게 만드는 작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