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으로 빚어낸 담담한 열정 아니에르노 『단순한 열정』 책 추천

최근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소설 『단순한 열정』을 읽었습니다. 책을 덮은 뒤, 마음 한 켠에 잔잔한 파문이 일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단순한 줄거리 속에 뜨거운 열정을 담고 있지만, 그 표현 방식은 놀라울 만큼 담담하고 솔직합니다. 마치 친구에게서 조용히 털어놓는 고백을 엿들은 듯한 기분이랄까요. 이번 글에서는 『단순한 열정』의 줄거리와 주요 테마, 작품을 읽으며 느낀 솔직함의 힘, 그리고 작가 아니에르노의 문체적 특성과 사상, 다른 작품들과의 연결성까지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이 책을 어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그리고 작가에 대한 소개도 함께 담았습니다.


『단순한 열정』의 줄거리와 주요 테마

『단순한 열정』은 아니에르노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반자전적 소설입니다. 작품 속 화자(=작가 자신)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한 남자와의 관계를 담담하게 회고합니다. 그 남성은 동유럽 출신으로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 두 사람은 국적과 신분을 넘어 격정적인 사랑에 빠져듭니다. 줄거리는 복잡한 사건 없이, 오로지 화자가 그 남자를 기다리고 갈망하는 시간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남자가 전화를 걸어오고, 찾아오고, 함께 보내는 짧은 만남들 –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런 일상의 반복입니다. 얼핏 보면 단조롭지만, 사실 그 단순함 속에 엄청난 감정의 소용돌이가 숨어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요 테마는 제목 그대로 ‘열정(passion)’ 그 자체입니다. 아니에르노는 한 여성으로서 겪은 사랑과 욕망을 숨김없이 보여줍니다. 그녀는 사랑에 빠졌을 때의 절실함, 상대를 기다리는 초조함, 만남의 순간에 느끼는 강렬한 행복과 그 후의 공허함까지, 열정의 전 단계를 포착합니다. 특히 주인공은 연인과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직장에서도, 장을 볼 때도, TV 뉴스를 볼 때조차도 머릿속에는 그 사람으로 가득 차 있죠. 이러한 몰입과 집착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법한 사랑의 모습이라 더욱 공감이 됩니다.

동시에 작품은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을 기다리는 동안 주인공은 때로는 자신이 겪는 감정의 소모를 관조하기도 하고, 이 관계의 끝을 예감하며 쓸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남성과 보낸 짧은 행복의 순간들 뒤에 찾아오는 긴 고독의 시간들은 열정의 이면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 열정적인 관계는 영원하지 않았고, 남자가 삶에서 사라진 뒤 남겨진 사람은 화자 혼자입니다. 아니에르노는 그 상실과 공허를 담백하게 묘사하면서, 기억으로서의 사랑을 글로 남깁니다. 요약하면, 『단순한 열정』은 특별한 사랑의 경험을 통해 사랑의 본질과 기억에 대해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열정』과의 만남

책상 위에 놓인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책 표지 사진
솔직하고 담담한 문체로 사랑과 욕망을 그린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최근 읽고 깊은 여운을 남긴 『단순한 열정』. 처음 책을 봤을 때는 이 담담한 표지가 내용과 얼마나 연결될지 궁금했는데, 읽고 나니 표지 속 여성의 모습이 이 책의 분위기를 너무 잘 표현한 것 같아서 놀랐다. 이 책은 화려함보다는 진실함으로 독자에게 깊숙이 다가오는 힘을 지닌 작품이다.


솔직한 감정 표현이 주는 조용한 울림

아니에르노의 솔직함은 이 책을 읽는 내내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정도로 개인적이고 노골적인 감정과 사생활을 고백하듯 드러내는 작품을 처음 접하면 조금은 당혹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남자와의 관계 묘사도 꽤 직설적이고, 주인공이 느끼는 성적 욕망이나 집착 또한 숨김없이 표현되거든요. 자칫하면 독자로 하여금 불편함을 줄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니에르노의 문장은 그런 노골적인 내용조차도 담담하고 차분하게 전달합니다. 그녀는 과장된 수사나 흥분된 어조 없이, 마치 관찰일지를 쓰듯 자신의 내면을 기술합니다. 이 담담한 톤 덕분에 오히려 저는 불편함보다는 조심스럽고 은은한 감정이 마음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일기를 허락 받고 읽는 듯한 신뢰감이랄까요. 그 솔직함은 노출이 아니라 용기 있는 고백처럼 다가왔습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연인의 전화를 하루 종일 기다리며 보내는 모습을 그릴 때, 그 절박하고도 애틋한 심정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있는 그대로 적어 놓습니다. “내일은 꼭 전화가 오겠지” 하는 희망과 “혹시나 영영 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읽으면, 저 역시 예전의 비슷한 기억들이 떠올라 가슴이 아릿해졌습니다. 에르노는 자신이 얼마나 그 사랑에 몰두했는지 숨김없이 털어놓음으로써, 오히려 독자인 저를 조용히 몰입하게 만들었습니다. 문장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저도 그녀의 마음결 속에 들어가 함께 기다리고 긴장하고 있더군요.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가의 자기폭로적 용기가 가져오는 치유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약한 모습이나 때로는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감정들까지도 서슴없이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런 솔직한 고백을 통해 인간이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감정을 드러내 보이니, 읽는 이로서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니에르노의 솔직한 글쓰기가 주는 울림은 크지만 소리내어 울지 않는 조용한 울림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진솔함의 힘을 다시금 깨달았고, 글이 주는 감정의 깊이에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누구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은가

『단순한 열정』은 짧은 분량이지만 여운이 오래 남는 책입니다. 문장도 어렵지 않고 분량도 길지 않아 겉보기에는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책이 성인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권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진솔한 사랑 이야기자전적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들, 혹은 깊이 있는 감정 서사를 원하는 분들께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사랑에 한 번쯤 올인 해본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더더욱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에르노의 감정 표현이 섬세하면서도 직설적이어서, 연애의 기억이나 그리움의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거든요.

다만, 아주 어린 독자층에게는 이 책이 다소 무겁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10대 초반의 청소년이라면 이 작품 속 사랑의 깊이나 육체적인 욕망의 솔직한 표현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 일부 내용은 성인들의 관계를 다루고 있어서, 충분한 삶의 경험이 없는 너무 어린 독자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올 여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폭력적이거나 부적절한 내용은 전혀 아니지만, 사랑에 대한 성찰이 주된 테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숙한 독자가 읽어야 더 공감할 수 있을 듯합니다.

20대 이상의 성인 독자라면 특별한 제한 없이 이 책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연령이 올라갈수록, 그리고 다양한 사랑의 얼굴들을 겪어볼수록 이 책이 전하는 미묘한 감정에 깊이 빠져들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중년의 독자라면 과거의 열정적인 사랑을 떠올리며 공감할 수 있고, 젊은 독자라면 언젠가 경험하게 될지도 모를 감정에 대해 미리 간접 체험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단순한 열정』은 널리 권하고 싶은 작품이지만, 읽는 이의 삶의 경험치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질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겠지만, 솔직한 사랑의 초상이라는 보편성만큼은 모든 성숙한 독자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에르노는 누구인가?

책 속에 실린 아니 에르노 작가 소개 페이지 사진
평범한 일상 속의 진실을 문학으로 승화한 작가, 아니 에르노

아니 에르노는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의 작가로, 자신이 살아온 삶의 다양한 국면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회적 맥락 속에서 개인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그녀의 글쓰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으며, 특히 그녀가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 또한 ‘사적인 기억을 통한 사회적 성찰’이라는 점이 인상 깊다.


아니에르노의 문체적 특성과 사상, 담담함 속에 깃든 예리함

아니에르노의 글쓰기는 겉보기엔 평이하고 담백합니다. 수식어를 남발하지도 않고, 특별히 복잡한 문장 구조를 쓰지도 않습니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며, 마치 일기나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문체를 가리켜 종종 “평평한 글쓰기(écriture plate)”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화려한 비유나 감정의 과잉 표현 없이 사실을 담담히 적시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나 이 담담함 속에는 오히려 더 큰 울림과 예리함이 숨어 있습니다. 독자가 과장된 표현 없이 날 것의 감정과 마주하게 되니까, 문장의 여백에서 오히려 더 큰 공감과 감정의 파동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니에르노는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사적인 기억을 사회적 맥락과 연결짓는 독특한 글쓰기를 선보여 왔습니다. 그녀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전적이며 동시에 사회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습니다. 예를 들어, 『단순한 열정』에서도 주인공의 사적인 연애담 속에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시대적 분위기가 은은하게 깔려 있습니다. 연인이 동유럽 출신이라는 설정은 당시 동구권의 정세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인공이 연인을 기다리며 보던 텔레비전 뉴스나 당시에 듣던 유행가 등의 디테일은 그 시대의 공기를 담아냅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작품이 단순한 개인의 연애담을 넘어서 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 되게 합니다. 아니에르노는 이렇게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시선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그녀의 솔직한 고백은 곧 한 사회의 기억으로 승화되곤 합니다.

아니에르노의 사상적 기반에는 페미니즘적 시각계급의식도 엿보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여성으로서 겪는 억압이나 사회적 편견, 계층 간의 갈등 등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이를테면, 젊은 시절 겪은 불법 낙태 경험을 다룬 『사건(원제: L’Événement)』에서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당시 사회의 금기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고,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아버지의 자리』, 『한 여자』 등)에서는 프랑스 사회의 계급 이동과 교육, 문화적 변화 등을 함께 그려냈습니다. 그녀는 개인의 이야기가 곧 사회의 이야기임을 몸소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이는 “대부분 자전적이며 사회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을 집필했다”는 평가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요컨대, 아니에르노의 문체는 담담하지만 날카롭고, 사상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입니다. 그녀는 솔직함을 무기로 자신의 내면을 해부하듯 글을 쓰면서, 동시에 그 해부를 통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비춰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글은 읽고 나면 차분한 문장 뒤에 숨은 예리한 통찰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단순한 열정』에서도 그녀의 이러한 문체적 특징과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단순한 사랑 이야기 이상의 인문학적 깊이를 느끼게 합니다.


솔직함과 진정성의 힘

책을 펼쳐놓고 한 페이지를 찍은 모습으로, 텍스트가 잘 보이는 사진
진솔한 내면의 감정을 담담히 고백하는 아니 에르노의 문장들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꾸밈없이 기록하고 싶어 하는 태도였다. 이런 그녀의 솔직한 글쓰기는 읽는 동안 묘한 조심스러움과 깊은 공감을 느끼게 해줬다. 우리가 가끔 느끼지만 표현하기 꺼렸던 감정들을 그녀는 과감하게 보여준다.


그녀의 다른 작품들과의 연결성, 일관된 주제의식의 탐색

아니에르노의 작품 세계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각 작품들이 따로이면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일생을 통틀어 자신의 다양한 삶의 조각들을 작품 하나하나에 담아왔습니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각각의 책이 모여 한 사람의 긴 자서전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열정』이 한 여성의 사랑과 열정을 포착한 조각이라면, 다른 작품들은 각각 다른 주제의 삶의 단면을 그려내죠.

예를 들어 『한 여자』는 아니에르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생애와 죽음을 담담히 그린 작품입니다. 이 책에서는 어머니라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여성 세대 간의 변화, 모성의 의미, 그리고 인생의 섭리 등을 성찰하는데, 이는 『단순한 열정』과는 소재는 다르지만 여전히 개인적 기억의 보편성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통합니다. 『아버지의 자리』는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노동자 계급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딸인 자신을 교육시키며 겪는 계층 상승의 어려움부녀 간의 감정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아니에르노 자신의 성장 배경과 사회적 맥락이 드러나는데, 역시 개인사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한 단면을 조명하는 그녀의 일관된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월』(원제: Les Années)은 아니에르노의 작품들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194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작가 본인의 삶과 프랑스 사회의 변천을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일종의 연대기적 회고록입니다. 이 책에서 아니에르노는 “나”라는 말 대신 “그녀(elle)”라고 자신을 지칭하며, 한 사람의 개인사가 어떻게 시대와 함께 변화하고 형성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월』을 읽다 보면, 한 개인의 추억 앨범을 보는 동시에 프랑스 현대사의 사진첩을 함께 넘기는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기법은 아니에르노 작품세계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평단에서는 『세월』을 그녀의 대작이자 대표작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니에르노의 작품들은 모두 연결되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억과 시간, 그리고 정직한 기록”이라는 공통된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기억(『단순한 열정』), 부모에 대한 기억(『한 여자』, 『아버지의 자리』), 사회와 함께 한 세월의 기억(『세월』), 금지되고 숨겨야 했던 아픈 기억(『사건』) 등, 그녀는 살아오면서 접한 모든 기억의 조각들을 문학으로 승화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작업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것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시대와 사회, 그리고 인간 보편의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점입니다. 아니에르노의 글을 여러 권 읽어본 독자들은 공통적으로 느낄 것입니다. 어떤 책을 읽든, 궁극적으로는 한 작가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한 가지 이야기, 즉 “삶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것”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는 것을요.

결국 아니에르노의 여러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진실된 기록과 기억의 힘입니다. 『단순한 열정』 역시 그 거대한 삶의 기록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서, 열정이라는 주제를 통해 기억과 자기성찰의 의미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단순한 열정』을 읽고 감동했다면, 그녀의 다른 책들도 자연스럽게 읽어보고 싶어질 것입니다. 각 작품들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깊숙이 흐르는 정서적 맥락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 더 큰 공명을 일으키거든요.


사랑, 기억 그리고 문학적 성찰

『단순한 열정』 책 맨 뒷부분의 옮긴이의 말이 담긴 페이지 사진
옮긴이가 바라본 『단순한 열정』, 사랑과 기억에 대한 고찰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나 또한 작품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작품 속 열정이 기억과 어떻게 얽히고, 또 우리가 왜 과거의 사랑을 끊임없이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보는지 예리하게 짚어주었다. 책의 끝자락에서 이런 해석을 읽으니 작품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진 기분이었다.


작가 아니 에르노 소개

삶과 문학, 그리고 의미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저자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글을 맺고자 합니다.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작가로,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작은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생활을 꾸렸고, 그는 그곳에서 소시민적인 삶의 단면들을 몸으로 느끼며 자랐습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뒤 교사 자격을 얻어 한동안 문학 교사로 일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에 자전적 소설 Les Armoires vides (한국어 번역 제목: 『빈 옷장』 혹은 『비어있는 내장고』로도 알려짐)로 등단한 에르노는, 1980년대 들어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 방향을 확립합니다. 1984년에는 아버지와 자신의 성장 배경을 그린 『아버지의 자리』로 프랑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르노도 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자전적이면서도 사회학적인 통찰이 담긴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펼쳐 보였고, 프랑스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세월』, 『사건』, 『단순한 열정』 등의 작품이 폭넓게 읽히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아니에르노의 작품이 가지는 의미는 프랑스 사회와 전세계 독자들에게 보편적인 울림을 준다는 데 있습니다. 그녀는 자전적 소설의 대가로 불리는데, 이는 자기 자신의 경험을 철저히 파고들어 문학적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능력 덕분입니다. 평론가들은 그녀의 글에서 사적인 기억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동시에, 그것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변화까지도 포착하는 눈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런 능력 때문에 아니에르노는 “개인과 역사의 교차점에서 진실을 기록하는 작가”로 종종 묘사됩니다. 실제로 그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나 개인의 이야기를 쓰지만, 그것은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철학 아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글로 옮기는 용기를 보여주었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에르노의 업적은 2022년 정점을 찍었습니다. 바로 그 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인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는 그녀를 선정한 이유로 “개인 기억의 뿌리, 소외, 집단적 구속을 밝혀내는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들었습니다. 이는 그녀의 문학 세계를 정확히 요약한 말이기도 합니다. 에르노는 이 상을 받으며 프랑스 여성으로서는 사상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수상 소식에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아니 에르노는 여성과 잊혀진 이들의 목소리“라고 축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녀의 글쓰기가 사회적 약자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힘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것이지요.

현재 아니에르노는 팔십 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작 열정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녀의 기존 작품들도 전세계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그녀의 수상 후 여러 작품들이 새로 조명받으며 독자층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아니에르노는 프랑스 문학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흔히 프랑스 문학이라 하면 떠올리는 낭만적이거나 철학적인 색채와 달리, 아니에르노의 글은 일상의 언어로 보편적 진실을 말해주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또한 여성 작가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왔다는 점에서 국내의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특별한 공감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왜 아니 에르노인가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책 뒷표지의 소개글과 리뷰가 적힌 부분 사진
일상의 기억을 날카롭게 파헤치는 작가 아니 에르노의 대표작

뒷표지를 보며 내가 느낀 것은 ‘이 작품이 개인의 사랑 이야기만이 아니다’라는 점이었다.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개인의 감정뿐만 아니라 그 감정이 발생한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분위기까지도 세심하게 담아낸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으면 개인적인 이야기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의 삶 전체와 맞닿아 있음을 깨닫게 된다.


담담한 고백의 힘을 느끼며

아니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으며 저는 문학이 얼마나 솔직하고도 아름답게 우리의 내면을 건드릴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없이도, 한 사람의 진솔한 감정 고백만으로 독자의 마음을 울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책장을 덮은 뒤 찾아온 조용한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운이 깊어지는 듯했습니다. 마치 은은한 향기처럼요.

『단순한 열정』은 사랑에 관한 책이지만 동시에 기억에 관한 책이며, 자기 고백의 문학입니다. 아니에르노의 담담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 각자의 삶 속 뜨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품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도 해보게 되지요.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때로는 가슴이 먹먹했고, 때로는 지난날의 나 자신을 토닥여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한 여성의 조심스런 고백이 어떻게 이토록 보편적인 감동을 줄 수 있는지 경이롭게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 『단순한 열정』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자신 있게 권하고 싶습니다. 화려한 문장은 없어도 진실된 이야기 한 편이 얼마나 큰 울림을 주는지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책을 흥미롭게 읽으셨다면, 아니에르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보세요. 각각의 작품들이 한데 모여 전하는 삶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성찰과 위로를 선사할 것입니다. 담담하지만 날카로운, 솔직하지만 따뜻한 아니에르노의 문학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여러분도 분명 저와 같은 감동과 여운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인생의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르는 열정의 기억이 있다면, 아니에르노의 이 솔직한 이야기가 그 기억을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담담한 고백의 힘을 전해준 『단순한 열정』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 노벨 문학상에 아니 에르노‥자전적 소설 대가 (2022.10.07/뉴스투데이/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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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0,656회 (2022. 10. 7.)

프랑스의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가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MBC 뉴스 보도다. 아니 에르노는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로서 여성의 낙태권과 피임 등 여성의 자유와 권리 문제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고 소개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아니 에르노를 선정한 이유로 집단적 통제 요인을 밝히는 용기와 예리함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아니 에르노는 『단순한 열정』을 비롯하여 『부끄러움』, 『집착』, 『탐닉』 등의 대표작들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을 솔직하게 써왔다. 수상 소식을 듣고 기쁨과 자부심을 표현한 그녀는, 특히 여성과 억압받는 이들의 불의에 맞서 싸울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으며,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강한 의지도 드러냈다.

문학의 나라 프랑스는 알베르 카뮈 등 지금까지 16명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나, 여성 작가로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아니 에르노가 최초이다. 2022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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