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리뷰, 뜨거운 감정을 차갑게 기록한 책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제목처럼 짧고 강한 책입니다.

사랑에 빠진 한 사람이
기다리고, 흔들리고, 매달리고,
다시 기억하는 시간을 적은 책입니다.

읽는 동안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과장되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감정은 뜨거운데
문장은 차갑습니다.

그 거리감이
이 책을 오래 남게 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책 표지 사진
뜨겁지만 차가운 책.

표지를 처음 봤을 때
책의 분위기가 이미 조금 느껴졌습니다.

검은색 표지,
반쯤 가려진 얼굴,
그리고 《단순한 열정》이라는 제목.

제목은 짧지만
읽고 나면 전혀 가볍지 않습니다.

이 책은 사랑을
아름답게 꾸며 보여주지 않습니다.

기다림, 불안, 집착, 공허함까지
한 사람이 열정에 사로잡혔을 때 생기는 감정을
그대로 놓아둡니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고,
그래서 더 솔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책 속에 실린 아니 에르노 작가 소개 페이지 사진
기억을 기록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사적인 기억을
숨기지 않고 써온 작가입니다.

이 책도 그렇습니다.

개인의 사랑 이야기처럼 시작하지만,
읽다 보면 한 사람이 감정에 붙잡힌 시간을
기록한 글처럼 느껴집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 설명보다
저에게는 이 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자기 삶의 부끄럽고 약한 부분까지
문장 안으로 가져오는 사람.

《단순한 열정》은
그런 작가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책이었습니다.

책을 펼쳐놓고 한 페이지를 찍은 모습으로, 텍스트가 잘 보이는 사진
열정의 흔적들.

이 페이지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화자는 사랑을
큰 사건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은 기호들을 모읍니다.

전화가 올지,
언제 만날지,
그가 남긴 말이 무슨 뜻인지.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건보다 신호에 더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말 하나가
하루 전체를 흔들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씁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던 시간,
혼자 의미를 붙이던 순간들이
불쑥 떠오릅니다.

『단순한 열정』 책 맨 뒷부분의 옮긴이의 말이 담긴 페이지 사진
사랑의 기억.

옮긴이의 말을 읽으면서
이 책이 사랑의 순간보다
그 사랑을 다시 꺼내보는 방식에
더 가까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정은 지나갑니다.

그런데 지나간 뒤에도
기억은 남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그 기억을 다시 꺼내
왜 그토록 흔들렸는지
뒤늦게 바라봅니다.

《단순한 열정》은
사랑의 감정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잘한 사랑인지,
틀린 사랑인지 따지기보다
그때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그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책 뒷표지의 소개글과 리뷰가 적힌 부분 사진
단정하고 잔인한 기록.

뒷표지의 문장들처럼
이 책의 문체는 단정합니다.

감정은 격렬한데
문장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날카롭게 들어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설명하는 대신,
차분하게 관찰합니다.

그 차분함 때문에
읽는 사람은 감정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단순한 열정》은
사랑을 부러워하게 만드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얼마나 낯설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에 가까웠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제일 오래 남은 건
이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는지가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 감정을
이렇게까지 숨기지 않고?
기록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좋아했다는 말보다
기다렸다는 말이 더 크게 느껴지는 책.

사랑했다는 말보다
그 사랑에 사로잡혀 있던 시간이
더 선명하게 남는 책.

《단순한 열정》은
짧지만 쉽게 넘겨지지 않았습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도 있고,
너무 건조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이 책의 솔직함이 좋았습니다.

감정을 예쁘게 정리하지 않고,
그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