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쓴 문장, 김훈의 깊이를 만나다
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단단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냥 깔끔하게 잘 쓴 글과는 다른, 말 그대로 단단한 문장. 그 단단함이 어디서 오는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나온다. 단어를 고르는 태도, 글을 쓰는 방식, 그리고 그 글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담아내는지가 문장의 밀도를 결정한다.
김훈의 연필로 쓰기는 그런 단단한 문장들로 가득한 책이다. 수필이라고 하기엔 문장 하나하나가 감상 이상으로 깊고, 산문이라고 부르기엔 지나치게 날이 서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아, 이렇게도 세상을 볼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연필을 쥔 한 작가의 태도

책의 제목부터 강렬하다. 연필로 쓰기.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무언가 결연한 의지처럼 느껴진다.
김훈은 여전히 연필을 깎아 원고지에 글을 쓴다. 어찌 보면 무척 비효율적인 방식인데, 그는 이 행위에 대해 “연필은 나의 삽이다”라고 말한다. 삽으로 흙을 퍼 올리듯이, 연필로 문장을 퍼 올린다는 뜻이겠지. 하루를 보내고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가 쌓이면 그게 자신의 하루라고도 한다.
이 말을 듣고 나면, 우리가 흔히 키보드로 두드려 만드는 글과는 완전히 다른 무게가 느껴진다. 연필로 쓰면 문장 하나하나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쉽게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이 번거로우니, 쓰기 전에 머릿속에서 문장을 여러 번 굴려보게 된다.
결국 이런 태도가 연필로 쓰기를 더욱 단단한 문장으로 가득 채운다.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고, 사소한 단어 하나도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

김훈은 평범한 일상을 낯설게 보게 만드는 작가다.
그의 글에서는 흔한 소재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태어난다.
예를 들어 ‘오이지’를 이야기할 때도
“오이지는 시간을 절여서 먹는 반찬이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말하는 듯하다.
‘똥’에 대한 글도 마찬가지다.
김훈은 정약용이 똥을 연구한 것을 언급하며, 인간이 가장 더럽다고 여기는 것마저도 가치를 가지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냄새나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결국 삶의 일부이며,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런 글을 읽으면, 그냥 지나쳤던 일상적인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 하나도, 습관적으로 먹는 음식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의 얼굴도.
죽음과 늙음, 그리고 시간

연필로 쓰기에는 죽음과 늙음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김훈은 이를 비극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 형용사의 세계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조금씩 감이 온다.
젊음은 동사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실수를 저지르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이다.
하지만 늙음은 다르다.
더 이상 바삐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상태, 이제는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받아들이는 상태다.
그래서 늙음은 형용사다. 그 자체로 하나의 상태이며,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이런 문장을 보면, 그냥 늙어간다는 사실이 덜 두렵게 느껴진다.
김훈이 말하는 세상

김훈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독특한 작가다.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슬픔과 분노를 표현한다.
그런데 김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잊을 수 있다고 해서, 잊지 않는 사람들을 모욕하지 말라.”
라고 말한다.
그의 문장은 감정을 넘어선다.
우리에게 기억하는 일의 의미를 묻고, 그 기억을 어떻게 간직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늘 무거운 건 아니다.
때때로 느껴지는 유머와 인간적인 따뜻함이 있다.
그는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걸 좋아하는데, 특히 공원에서 노인들이 장기 두는 모습을 관찰하는 걸 즐긴다고 한다.
어느 날 장기판 앞에서 할아버지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이 상(象)을 잘 써야 해.”
라고 말하는 걸 듣고, “아, 이 사람이 상(象)을 잘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 노인은 세상에 많은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지 몰라도, 동네 장기판에서만큼은 상(象)을 잘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내는 김훈의 시선이 돋보인다.
문장은 곧 노동이다

김훈은 글쓰기를 노동으로 여긴다. “연필은 나의 삽이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문장을 다듬는 과정을 땅을 파는 일에 비유한다. 삽질을 하다 보면 돌이 걸리고, 뿌리가 얽혀 있고, 흙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부분이 있다. 쉽게 퍼 올릴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더디고 힘든 과정이 된다.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김훈은 첫 문장을 쉽게 쓰지 않는다. 문장이 문장답기 위해 버텨야 하는 힘을 고민한다. 그러다 보니 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망설임과 수정을 거친다. 그렇기에 그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마치 단단한 바위처럼 묵직하게 느껴진다.
특히 그의 원고지를 보면, 얼마나 많은 지우개질과 덧씌우기가 반복되었는지 흔적이 남아 있다. 손으로 직접 문장을 쓰고 고치는 과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그는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가볍게 삭제하고 다시 입력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필과 지우개를 사용하며 몸으로 문장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노동을 통해 빚어진 문장은 더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그의 문장이 삶을 버티는 구조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단어 하나를 허투루 쓰지 않으려는 노력, 쉽게 흩어지지 않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기울이는 고심이 그의 글을 더욱 단단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노동을 거쳐 완성된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오래 남는 여운을 남긴다.
사소한 것에서 길어 올리는 깊이

김훈의 글에는 우리가 흔히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자주 등장한다. 떡볶이, 냉면, 오이지 같은 음식부터 공 차기, 새들, 그리고 낡은 동네 골목길까지. 얼핏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소한 것들 속에서 삶의 본질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예를 들어, 그가 ‘냉면을 먹으며’라는 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한 그릇의 냉면 속에 담긴 시간의 축적, 재료가 변형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기억이 녹아 있다. 그는 냉면 한 그릇을 보며 한국의 역사와 계절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떠올린다.
또한, ‘오이지를 먹으며’라는 글에서는 오이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짜지고, 단단해진다. 그는 이를 시간과 삶의 변화에 대한 은유로 풀어낸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도 오이지처럼 단단해지고, 때로는 그 단단함 속에서 짠맛이 우러나온다.
이렇듯 그는 누구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사물과 경험을 통해 더 깊은 차원의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그의 글을 읽고 나면, 길가에 핀 작은 들꽃 하나도, 우리가 매일 먹는 밥 한 끼도 더 이상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의 시선이 닿으면, 일상이 철학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달라지는 것들

연필로 쓰기는 읽고 나서도 오래 남는 책이다.
김훈의 문장은 단단해서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
✔️ 평범한 사물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고,
✔️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생각해보게 되고,
✔️ 어떤 것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문장을 남기며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마무리하며

연필로 쓰기를 읽고 나면 김훈의 다른 책들도 궁금해진다.
칼의 노래, 남한산성, 자전거 여행.
그가 쓴 책들은 하나같이 “읽어봐야 한다”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연필을 잡고 싶어졌다.
연필을 깎고,
원고지를 펴고,
단단한 문장을 남기는 일.
김훈이 말한 것처럼,
하루가 끝나고 책상 위에 지우개 가루가 쌓이는 느낌을 경험해보고 싶다.
그렇게 연필로 글을 쓰며,
세상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 김훈, 연필로 꾹꾹 눌러 쓴 문장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연필을 깎아 원고지에 글을 쓰는 작가, 김훈.
그가 3년 동안 1,156매의 원고지를 채우며 써 내려간 산문집 『연필로 쓰기』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호수공원을 산책하며 떠올린 생각, 친구와의 대화,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철거민 문제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까지 담겨 있다.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도 김훈 특유의 유머가 스며 있어,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묵직한 현실 속에서도 삶을 버텨내는 힘을 발견할 수 있다.
📺 『연필로 쓰기』를 다룬 영상 두 편을 소개한다.
📌 YTN 뉴스 – 『연필로 쓰기』 소개
김훈 작가의 신간을 깊이 있게 다룬 YTN 뉴스 영상.
그의 글쓰기 방식과 이번 책이 갖는 의미를 엿볼 수 있다.
👉 영상 보러 가기: YTN – 『연필로 쓰기』 소개
📌 고려대학교 KU CCL – ‘작가를 만나다’ 김훈 편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연필을 고집하는 이유,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그의 철학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강연 영상.
👉 영상 보러 가기: KU CCL – 김훈 ‘작가를 만나다’
직접 연필을 깎아가며 만들어낸 김훈의 문장.
그 묵직한 글의 깊이를 함께 들여다보자. ✍️📖
『연필로 쓰기』 독서모임 가이드 – 깊이 있는 대화를 위한 발제문 & 자료
김훈의 『연필로 쓰기』는 혼자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으면 더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누고, 김훈의 문장 속에 담긴 철학을 함께 풀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발제문, 토론 질문, 그리고 주요 내용을 정리한 도표 자료까지 함께 준비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더 깊이 탐구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 독서모임 진행 방식 (예시)
✔️ 1부: 각자 인상적인 문장 낭독 & 감상 나누기 (20~30분)
김훈의 문장은 짧고 단단한데, 이런 글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 큰 울림을 준다.
참여자들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 한 줄씩 낭독한 후, 왜 이 문장이 마음에 남았는지 이야기해본다.
✔️ 2부: 발제문을 중심으로 한 토론 (40~50분)
김훈의 문장은 깊은 사유와 철학을 담고 있기 때문에, 주제별로 정리한 발제문을 기반으로 토론을 진행한다.
✔️ 3부: 글쓰기 실습 (선택, 30분)
이 책의 제목이 『연필로 쓰기』인 만큼, 직접 짧은 글을 써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 주제: “내가 매일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 써보기”
- 예시: 김훈이 ‘오이지’, ‘냉면’, ‘똥’ 같은 일상적인 소재를 다룬 것처럼, 각자의 일상 속 평범한 대상을 글로 풀어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 발제문 – 토론 주제 & 질문
1️⃣ 문장은 곧 노동이다
📍 발제
김훈은 글쓰기를 노동이라고 말한다. 연필로 꾹꾹 눌러 쓰고, 지우개 가루가 쌓이는 과정을 통해 문장을 다듬는다.
📍 토론 질문
- 김훈이 말하는 ‘문장은 노동’이라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우리가 읽고 쓰는 글 중 ‘노동의 결과’라고 느껴지는 문장이 있는가?
- 디지털 시대에 연필로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까?
2️⃣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 발제
책의 2부 제목이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이다. 글을 쓰며 지우개로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은 망설임과 숙고의 흔적이다.
📍 토론 질문
- 여러분은 글을 쓸 때 많이 고치는 편인가, 아니면 한 번에 쓰는가?
- 망설임이 꼭 부정적인 것일까? 망설임을 거치면서 더 깊어지는 경험이 있었는지 공유해보자.
- 일상에서 ‘지우개’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ex. 후회, 수정, 반성, 시간)
3️⃣ 사소한 것에서 길어 올리는 깊이
📍 발제
김훈은 ‘냉면’, ‘오이지’, ‘공 차기’ 같은 사소한 것들을 통해 삶과 죽음, 역사와 시간을 이야기한다.
📍 토론 질문
- 일상 속에서 그냥 지나치는 것들 중, 깊이 들여다보면 새로운 의미를 가질 만한 대상이 있을까?
- 우리도 김훈처럼 ‘사소한 것에서 깊이를 발견하는 시선’을 가져볼 수 있을까?
4️⃣ 늙음은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 발제
김훈은 “늙기는 동사의 세계라기보다 형용사의 세계다.”라고 말한다.
📍 토론 질문
- 우리는 보통 ‘늙는다’라는 표현을 쓴다. 하지만 ‘늙음’이 형용사라면,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 나이 듦과 관련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다면 무엇일까?
5️⃣ 기억과 망각 – 세월호, 철거민, 그리고 기록
📍 발제
김훈은 세월호 참사, 철거민 문제 등을 다루며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 토론 질문
- 기억과 망각 중, 우리는 어떤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는가?
-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들, 혹은 쉽게 잊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인가?
- 기록이 가지는 힘은 무엇일까?
📊 주요 내용 정리 도표
주제 | 내용 요약 | 관련 글 제목 |
---|---|---|
글쓰기 철학 | 연필로 눌러 쓰고, 지우개로 망설이며 완성하는 과정 | “연필은 나의 삽이다” |
일상 속 사유 | 오이지, 냉면, 공 차기 같은 사소한 것에서 철학을 길어 올림 | “냉면을 먹으며” |
망설임과 숙고 | 글을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이 곧 생각을 깊게 만드는 과정 | “지우개는 나의 망설임이다” |
늙음과 시간 | “늙기는 동사가 아니라 형용사다” | “생명의 막장” |
기억과 기록 | 세월호 참사, 철거민 사건 등을 다루며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함 | “고래를 기다리며” |
📌 마무리 – 독서모임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이 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는 우리 각자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수 있다.
✔️ 우리가 쓰는 문장은 어떤 태도로 쓰여야 할까?
✔️ 일상의 사소한 것들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고, 서로의 답을 나누는 과정이 독서모임의 가장 큰 가치가 될 것이다. 『연필로 쓰기』를 통해 각자의 문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