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괜히 조금 가벼운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술』을 읽다 보니
술 좋아하는 마음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구나 싶었습니다.
웃긴 술자리 뒤에는
민망함도 있고,
괜히 꺼낸 진심도 있고,
다음 날 아침의 후회도 있습니다.
김혼비 작가는
그런 장면들을 너무 멋있게 포장하지 않습니다.
술에 대한 정보책도 아니고,
어떤 술이 맛있는지 알려주는 책도 아닙니다.
대신 술잔 옆에 있던 사람들,
그날의 기분,
조금 부끄러운 기억들이 남습니다.
가볍게 펼쳤는데,
생각보다 자주 멈추게 된 책이었습니다.

표지만 보면
유쾌한 술 에세이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웃긴 장면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술보다 술을 마시던 사람의 마음이
더 자주 보였습니다.
술자리는 늘 멋있지만은 않습니다.
말이 많아지고,
괜히 센 척을 하고,
다음 날엔 조금 후회하기도 합니다.
이 책은 그런 술자리의 모양을
꽤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편하게 읽히는데,
마냥 가볍게만 남지는 않았습니다.
책 내용과 구성

책은 수능 백일주 이야기부터
묘하게 웃겼습니다.
말도 안 되는 듯한데,
이상하게 그 시절의 들뜬 마음과
괜한 허세가 같이 떠올랐습니다.
술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때의 나이와 분위기,
친구들과의 이상한 용기를 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술자리 기억은 술맛만으로 남지 않습니다.
누구와 있었는지,
그날 왜 웃었는지,
무슨 말을 했다가 괜히 민망해졌는지.
그런 것들이 더 오래 남습니다.
『아무튼, 술』은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쓴 책처럼 읽혔습니다.

어떤 마음은
정색하고 말하기엔 너무 무겁고,
그냥 넘기기엔 계속 걸립니다.
그럴 때 술자리는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만드는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술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술 때문에
더 엉망이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밤에는
평소라면 못 했을 말을
조금 덜 민망하게 꺼내게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이 좋았던 건
그 양쪽을 다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즐거운 술자리도 있고,
과했던 술자리도 있고,
다음 날 후회하는 술자리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어쩐지 사람 사는 모양처럼 읽혔습니다.

그 사람의 삶의 결까지 들여다보는 일

술자리는 술맛보다
그날 앉아 있던 자리와 사람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어떤 집,
어떤 골목,
어떤 편의점 앞.
별거 아닌 장소인데도
술과 같이 기억에 붙어 남는 곳들이 있습니다.
책을 읽다 보니
예전에 함께 마셨던 사람들도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간 밤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꽤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들.
『아무튼, 술』은
그런 기억을 괜히 한 번 더 꺼내보게 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구절과 느낀 점

술자리 기억이라는 게
꼭 술잔만 남기는 건 아니었습니다.
냉장고,
편의점,
골목,
밤공기처럼
옆에 있던 사소한 것들이
같이 붙어 남습니다.
냉장고 문을 닫는 작은 장면도
그래서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그냥 사소한 행동인데,
어느 저녁의 기분과
하루의 끝이 같이 묻어 있었습니다.
김혼비 작가는
그런 작은 장면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술 이야기를 하다가도
오래 쓴 물건,
익숙한 공간,
어느 날의 공기를 슬쩍 꺼내놓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읽다가도
가끔 멈추게 됐습니다.

걸으면서 마시는 술 이야기는
괜히 웃음이 났습니다.
저도 가끔 밤에 걷다가
캔맥주 하나 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막 대단히 힘든 날도 아닌데,
그냥 하루가 조금 덜 끝난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그럴 때 손에 캔 하나 들고 걸으면
괜히 오늘을 내가 마무리하는 기분이 듭니다.
누가 보면
그냥 캔맥주 들고 걷는 사람인데,
본인 안에서는
꽤 근사한 밤이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대단한 일탈은 아닌데
이상하게 숨이 트이는 느낌.
책 속 걸술 이야기는
그 작은 자유를 아는 사람의 문장처럼 읽혔습니다.
그래서 더 웃겼고,
조금은 부러웠습니다.

이 책에서 의외로 오래 남은 건
술자리보다
‘축소해도 괜찮다’는 쪽의 문장이었습니다.
술자리도 가끔은 그렇습니다.
더 오래 있어야 할 것 같고,
더 많이 어울려야 할 것 같고,
먼저 빠지면 괜히 미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날은
내 세계를 조금 줄이는 일이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내 속도,
내 자리,
내 크기.
그걸 지키는 일도
나쁘지 않다는 말처럼 읽혔습니다.
술 에세이를 읽다가
이런 문장에 멈출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 오래 남았습니다.
『아무튼, 술』은
술을 멋있게 포장하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웃긴 술자리도 있고,
민망한 기억도 있고,,
다음 날 후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장면을
너무 심각하게 꾸미지 않고
자기 말로 풀어내는 힘이 있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기보다
예전에 함께 마셨던 사람들과
그 밤의 기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술잔을 사이에 두고
괜히 크게 웃던 날.
별말 아닌 이야기를
오래 붙잡고 있던 밤.
다음 날 후회하면서도
그 시간이 완전히 싫지는 않았던 기억들.
제게 『아무튼, 술』은
그런 장면들을 다시 꺼내보게 한 책이었습니다.
술맛보다
그날 같이 앉아 있던 사람과
이상하게 길어진 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꽤 자주
멈추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