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 무의미의 축제 리뷰, 모든 일에 의미가 필요할까

무의미의 축제는 얇은 책입니다.

분량이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몇 장 넘기지 않아
이야기가 어디로 가는지 자꾸 놓쳤습니다.

인물들은 배꼽과 농담,
스탈린과 파티 이야기를 오갑니다.

뚜렷한 사건을 따라가기보다
대화가 계속 옆길로 새는 소설이었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무의미의 축제』 한국어판 표지. 미니멀한 흑백 선 그림과 작가의 서명이 붉은색으로 인쇄되어 있다.
밀란 쿤데라 장편소설 무의미의 축제

이야기는 알랭, 라몽, 샤를, 칼리방이라는
네 친구를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알랭은 거리에서 드러난 배꼽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출생과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샤를은 스탈린과 자고새 이야기를 꺼내고,
칼리방은 파키스탄 사람인 척하며
아무 뜻도 없는 말을 외국어처럼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들이
왜 한 권의 책에 함께 들어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아내려고 할수록
책이 더 멀어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무의미의 축제』의 뒷표지.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라는 문구와 책의 주요 주제가 요약되어 있다.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하는 법

뒤표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이 문장을 보고 나서야
책을 너무 열심히 이해하려 했던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도
무엇을 배웠는지 찾는 편입니다.

하루를 보낸 뒤에도
무엇을 했고 무엇이 남았는지
자꾸 확인하려고 합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날은
괜히 시간을 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하라는 말이
더 오래 남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의 축제』의 저자 밀란 쿤데라 소개 페이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다. 1975년 프랑스에 정착하였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정착한 밀란 쿤데라

책에는 스탈린이
자고새 스물네 마리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탈린은 농담처럼 말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편하게 웃지 못합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말은
농담조차 가볍게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남았습니다.

칼리방의 가짜 외국어도 비슷했습니다.

아무 뜻도 없는 말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외국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말 자체보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말했는지가
더 크게 작용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무의미의 축제』 본문 116페이지. "Ding an sich 같은 건 없다고."라는 문장이 강조되어 있으며, 존재와 의식에 대한 철학적 논의가 담겨 있다.
세계와 의미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대화

무의미의 축제에는
크게 감동적인 사건도 없고
분명한 답을 주는 장면도 없습니다.

대화는 어긋나고,
농담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며,
인물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합니다.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무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모든 문장과 시간에
꼭 쓸모 있는 뜻을 찾아야 한다는 마음은
조금 내려놓게 됐습니다.

별것 없는 대화와 웃음,
이유 없이 흘러간 시간도
굳이 지워야 할 순간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이해했다기보다
조금 덜 심각해져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무의미의 축제』 책 속 밀란 쿤데라의 작품 목록 페이지. 『농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 등 주요 작품들이 나열되어 있다.
함께 읽어보고 싶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

무의미의 축제를 읽고 나니
농담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다시 궁금해졌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한 번 읽고 명확하게 정리되는 작품이라기보다
시간이 지난 뒤 문득 다시 떠오르는 책에 가까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