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서평|불행해질 권리도 자유일까

이 소설이 무서운 건
사람들이 불행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그 만족을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더 섬뜩했습니다.

90년도 더 전에 쓰인 소설인데도
책 속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소담출판사) 한국어 번역본 표지. 흰색 배경에 눈을 감은 얼굴 이미지가 상단과 하단에 걸쳐 있으며, 책 제목과 저자의 이름이 한쪽으로 정렬됨.
행복하도록 길들여진 세계

행복하도록 만들어진 사람들

멋진 신세계가 그리는 사회에는
가난과 불안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인공 부화 과정을 거쳐 태어나고,
알파부터 엡실론까지
각자의 계급과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어진 일을 하며
현재의 삶에 만족하도록
태어날 때부터 조건화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패할 걱정도 없고
남들과 비교하며 진로를 고민할 일도 없습니다.

하지만 선택할 필요가 없는 삶을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요?

『멋진 신세계』 뒷표지 이미지. 책의 개요와 작품의 메시지를 설명하는 문장이 적혀 있으며, 하단에는 ISBN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얼마나 인간일까

가족과 사랑의 의미도
우리가 아는 모습과 다릅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말은
불편하고 낯선 단어가 되었고,
한 사람을 오래 사랑하는 일도 경계합니다.

사람들은 관계에서 생기는
외로움과 상실을 겪지 않습니다.

대신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쌓아가는 경험도 사라졌습니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
사랑까지 가볍게 만든 사회였습니다.

『멋진 신세계』의 저자 올더스 헉슬리에 대한 소개 페이지. 작가의 생애와 주요 작품이 서술되어 있다.
올더스 헉슬리

채찍보다 달콤한 통제

멋진 신세계를 읽으면
조지 오웰의 1984가 함께 떠오릅니다.

1984의 통제가 공포와 감시라면,
멋진 신세계의 통제는
만족과 쾌락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사람들은 억지로 복종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생활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바깥으로 나갈 이유조차 찾지 못합니다.

불만이 생겨도 괜찮습니다.
‘소마’를 먹으면 불편한 감정은
금세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싫다는 마음이 들기도 전에
그 마음을 없애주는 사회.

그래서 이곳의 통제는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멋진 신세계』 판권 페이지. 한국어 번역 출판 정보와 ISBN이 기재되어 있다.
1932년에 쓰인 미래

멋진 신세계가 처음 발표된 해는
1932년입니다.

기술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만
사람들이 편리함과 안정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는 놀랍도록 익숙했습니다.

사회가 자유를 강제로 빼앗는 모습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자유를 내어주는 모습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이 오래된 미래소설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비추는 이야기처럼
느껴진 이유이기도 합니다.

『멋진 신세계』 서문 페이지.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댜예프의 유토피아에 관한 인용문이 적혀 있다.
완벽한 사회를 경계하며

불행해질 권리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대화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존은 ‘불행해질 권리’를 원합니다.

고통과 실패가 좋다는 뜻은
아니었을 겁니다.

자신의 삶을 직접 선택하고,
그 결과까지 감당할 권리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에 가까웠습니다.

실수하지 않을 권리보다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원하는 사람.

그 마음이 이해되면서도
조금은 두렵게 다가왔습니다.

저 역시 자유로운 삶을 원하지만
고통과 불안까지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쉽게 답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에게도 소마가 있을까

소설 속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소마를 먹고 다시 행복해집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의 일상도 돌아보게 됐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스마트폰을 켜고 영상을 보거나,
먹을 것과 살 것을 찾곤 합니다.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편한 감정이 생기자마자
무언가로 덮으려고 했던 순간은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인지,
잠시 잊은 것인지도 구분하지 못한 채
괜찮아졌다고 여기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무엇이 소마인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불편한 마음을 지우지 않고
잠시 바라볼 수 있는가.

저에게는 그 질문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멋진 신세계』 번역자 안정효 소개 페이지. 번역자의 이력과 대표 번역 작품들이 설명되어 있다.
안정효 번역본

책을 덮고 남은 생각

저도 고통 없는 삶을 원합니다.

실패하거나 상처받는 일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없애는 조건으로
선택할 권리까지 넘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멋진 신세계가 불편했던 이유는
자유가 폭력으로만 빼앗기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아주 편안하고
달콤한 방식으로도
우리는 자유를 내어줄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행복인지,
행복하다고 믿도록 길들여진 것인지.

책을 덮은 뒤에도
그 차이를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