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문장, 한강 『작별』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을 읽고

며칠 전 따스한 오후, 오랫동안 눈여겨본 한강의 새 책 『작별』이 서점 책장 위에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몽환적이면서도 힘 있는 그녀의 문체를 믿고 펼쳐본 책 표지는 차분한 색조와 멀리서 보이는 발자국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이별’이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박힌 제목은 묘한 설렘을 주었고, 김유정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름도 읽기 전부터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다. 책을 덮은 뒤에도 잔잔한 파문 같은 여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이별과 사랑, 존재에 대한 물음이 담긴 문장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상작 ‘작별’이 담긴 문학상 작품집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작별』의 표지 사진
한강 작가의 ‘작별’이 실린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담백한 디자인 속 깊은 여운이 느껴졌어요.

표지 앞면은 은은한 파스텔 톤으로 칠해져 있고, 마치 눈 덮인 들판 같은 풍경 위로 발자국이 잔잔히 이어져 있다. 흩뿌려진 눈처럼 고요한 배경 속에서 ‘작별’이라는 단어가 금박으로 빛나며 눈길을 끈다. ‘수상작 한강’이라는 문구가 프린트되어 있어 한강 작가의 무게감이 전해진다. 차분하지만 묵묵한 발자국의 이미지에서, 나는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따라 걸어가는 기분이 되었다. 읽기도 전인데, 이 이야기가 어딘가로 나를 데려다줄 것만 같다.


‘작별’에 대한 심사위원의 평

『작별』 수상작품집의 뒷표지와 해설 문장
심사평 속 문장 하나하나가 이미 한 편의 시처럼 다가와요.

책 뒷면의 글귀는 묵직했다. “한강의 소설 『작별』은 묻는다.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부터 인간이 아닌가.” 읽는 순간부터 소설이 생과 사,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탐색할 것임을 예고한다. 일상에 묻혀 있던 존재의 물음들이 문장 한 줄에 다시 떠오른다. 문장과 문장의 사이로 스며드는 사유는 잔잔하지만 깊어서, 책장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곱씹게 된다.


“너무 추워요”에서 시작된 작별의 징후

한강 『작별』 소설 31쪽 내부 페이지
너무 추워요. 라는 짧은 문장에서 시작되는 이별의 예감, 그 고요한 울림.

문장들이 차례로 이어지는 본문 31쪽에는 한창 사랑을 돌아보는 듯한 독백이 담겨 있다. “그걸 사랑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라는 문장처럼, 주인공은 자신이 겪은 감정을 쉽게 사랑이라고 부르기 꺼리는 사람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라진 뒤 남는 것은 텅 빈 마음임을 깨달았던 것이리라. 이어지는 부분에서 “그런데 그게 어디로 갔지, 퍼뜩 놀라며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는 구절은 누군가의 부재에 갑작스럽게 마주한 혼란을 전한다. 끝머리에 적힌 “너무 추워요.”라는 짧은 고백은 차가운 공기처럼 읽는 사람의 가슴에도 서늘하게 닿는다.


안부라는 이름의 마지막 대화

한강 『작별』 소설 43쪽 내부 페이지
“엄마, 아빠는 어때요?” 일상적인 대화 속에 배어든 생의 경계와 슬픔.

페이지 43에는 가족의 온기가 녹아든 장면이 담겨 있다. 주인공이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묻는다. “엄마, 어떻게 지내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담담하게 대답한다. “우린 다 그렇지. 괜찮다, 너는 어떠냐?” 예상보다도 수화기 너머로 흐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무심한 듯하지 않지만 따뜻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전화가 끝난 뒤의 정적을 묘사하는 “순간, 지나갔다. 그대로, 그녀는 물끄러미 서 있었다.”라는 문장은 전화를 끊은 후에야 비로소 느껴지는 허전함과 고요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무리하며

『작별』을 덮은 지금, ‘작별’이란 단어는 그저 슬픈 이별의 감정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책 속 사랑과 상실의 풍경이 오래도록 마음을 파고들어, 내 삶 속 작은 이별들 역시 애틋하게 다가왔다. 어쩌면 모든 작별은 또 다른 만남을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문득 햇살 좋은 날 창밖을 바라보며 한강의 서정적인 한 문장을 떠올린다. “너무 추워요.”라고 고백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언젠가 내게도 따스한 햇살이 되어 다가오기를 바란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