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끓이며』를 읽고: 밥의 무게, 문장의 밀도, 그리고 인간이라는 서사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는 제목이 의도적으로 던져놓은 일상성의 외피를 벗기는 순간, 삶에 대한 거의 실존적인 고찰이 내부에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제목에 속았다. 라면이라는 단어가 갖는 소박함, 그리고 그것이 연상시키는 어떤 가벼운 따뜻함이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다. 마치 힐링을 가장한 산문집일 것이라는 편견 말이다. 그러나 읽어내려 갈수록 그 예감은 산산이 부서지고, 내 안에 남은 것은 무게감 있는 침묵과 수차례 멈춤이었다.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삶의 구조를 요리하고 해체한다. 그것도 매우 단단한 문장으로. 그가 끓여내는 것은 삶이고, 끓는 냄비 속에 담긴 것은 국물이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하루하루의 근본적 질문들이다.
“국물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은 제 맛을 잃지 않아야 한다”

책의 서문 격인 첫 산문 「라면을 끓이며」는 곧바로 ‘조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 관계, 삶의 리듬, 그리고 세계와의 거리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이 구절은 언뜻 보면 ‘맛’에 관한 기술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은 관계의 윤리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종종 가까워지기 위해 스스로를 지나치게 드러내거나, 반대로 타인을 흡수하려 한다. 그러나 김훈은 어떤 존재 간에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윤리적 거리를 제시한다. 국물과 면의 조화처럼,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지켜야 할 경계와 흘러야 할 온도가 있다는 말이다.
삶을 말하되, 감상을 강요하지 않는 작가

김훈은 특정한 감정을 독자에게 주입하지 않는다. 그는 울지 말라고도, 분노하라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일이 있다”고 건조하게 서술할 뿐이다. 그러나 그 서술의 냉정함이 역설적으로 더 강한 파장을 일으킨다. 그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독자 내부의 감정을 끌어올린다.
세월호의 비극, 소방관의 고립된 죽음, 자본에 의해 소외되는 인간 존재의 단면들. 이 모두는 김훈의 문장에서 ‘존재의 상태’로 다뤄진다. 그는 하나의 사회적 이슈를 넘어서, 인간이 겪는 본질적 고통에 천착한다. 그리하여 그의 글은 보편성과 사적인 감정이 동시에 교차하는 장을 만든다.
김훈은 사물과 사유의 사이를 들여다본다

그의 글쓰기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묘사의 디테일이 아니다.
오히려 ‘왜 이 사물에 멈추었는가’에 대한 철학적 집요함이다.
수박을 자르는 행위를 수 페이지에 걸쳐 서술하는 작가는 흔치 않다. 그러나 김훈은 이 과정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물로부터 ‘의미’를 끝까지 추출하려는 시도를 한다.
이것은 글쓰기의 문제라기보다, 존재 인식의 태도다.
그가 수박, 갯벌, 길, 닭장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오히려 그 표면에 끈질기게 매달려 속으로 파고드는 방식이다. 마치 그 안에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듯, 사물이라는 문을 열고 그 너머의 풍경을 보여준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 생존이라는 반복의 철학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죽는 날까지 매일 먹어야 한다.”
이 문장은 그 자체로 작은 철학이다.
‘밥’은 여기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를 상징한다.
밥을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또 밥을 먹어야 하는 이 순환은, 인간이 자율적 존재라는 환상을 깨뜨린다. 우리는 무언가를 먹고 또 일해야 하는 생물학적 존재이고, 김훈은 이 사실을 서글프게도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밥벌이”라는 말을 쉽게 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말 속에 감춰진 노동, 피로, 책임, 존재의 고단함까지 꺼내 보인다.
‘밥’이라는 단어가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그는 일상을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쓰되, 그 속에 숨은 존재의 무게를 꿰뚫는다.
작가의 말 — ‘말’과 ‘글’의 윤리적 무게

책 말미에 담긴 짧은 작가의 말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작가의 윤리의식을 함축하고 있다.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겠다.”
문장을 만들어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부끄러움, 자신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오해될 수도 있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문장이다. 글쓰기가 존재에 대한 책임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김훈이라는 작가의 ‘성찰’ 그 자체이기도 하다.
삶을 다루는 방식, 죽음을 인식하는 깊이, 말의 무게를 견디려는 태도.
『라면을 끓이며』는 그런 의미에서 작가 자신에 대한 조용한 회고록이며 동시에 윤리적 선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라면조차도 가볍지 않게 된다

『라면을 끓이며』는 속도가 나지 않는 책이다.
문장 하나하나가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어, 한 문장을 넘기기 전에 여러 번 되씹게 된다.
이 책은 빠르게 소비할 수 없는 글의 구조를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되돌린다.
나는 책을 덮고 나서 라면을 끓이는데도 이전과는 다른 손놀림을 경험했다.
국물을 조금 더 살폈고, 면의 익힘을 더 예민하게 바라봤다.
음식을 끓이면서도 내 삶의 온도를 가늠해보게 되었고, 그릇을 고르는 데조차 조금은 신중해졌다.
결국 김훈은 라면이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살아있음’이라는 상태를 재확인시켜준다.
『라면을 끓이며』는 인간이 먹고, 살아가고, 견디는 모든 과정에 대해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는 거창한 대의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대한 성실한 사유가, 오히려 독자의 삶 전체를 다시 보게 만든다.
단단한 문장, 조용한 사유, 무겁고도 따뜻한 한 그릇
1. 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문장이 도달할 때

김훈의 글은 그는 문장을 통해 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가닿으려 한다. ‘바다의 기별’ 같은 글을 읽으면, 사라진 것들, 되돌릴 수 없는 순간들, 그리고 우리가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떠오른다. 그의 문장은 마치 잃어버린 것들을 문장 속에서 다시 불러오는 주문과도 같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살아가는가? 김훈은 이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지며, 글이 도달할 수 있는 경계를 넓힌다.
2. 고요하지만 날카로운 문장, 김훈의 문체

김훈의 글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불필요한 감정을 덧붙이지 않으면서도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는 점이다. 그의 문장은 마치 칼을 벼린 듯 절제되어 있다. 그는 문장을 과장하거나, 감정을 인위적으로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극도로 응축된 단어들을 사용해, 오히려 더 강한 정서를 끌어낸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이 삶의 본질을 이토록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절제된 문체 덕분이다.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에게 묵직한 감정을 남기는 것이 김훈의 문장이 가진 힘이다.
3. 라면을 끓이는 순간, 우리가 마주하는 시간

김훈이 ‘라면’을 이야기하면서 ‘삶의 리듬’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는 라면을 끓이는 짧은 몇 분 동안에도 우리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다. 국물이 면에 스며들듯, 우리는 하루하루의 기억과 감정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라면이 익어가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할 수도 있고, 혹은 누군가를 떠올릴 수도 있다. 결국, 『라면을 끓이며』는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라면을 끓이며』는 읽기에 ‘편한’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읽고 나면 분명히 달라지는 지점이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일상을 바라보는 초점이 달라진다.
누군가는 이 책을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김훈은
진실을 가능한 한 진실에 가깝게 쓰기 위해 단단함을 택했다.

그의 문장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고, 절제되어 있지만 깊다.
그는 ‘삶’이라는 가장 오래된 주제를, 가장 낡은 언어를 통해, 가장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말해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글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라면을 끓이며』는 그런 책이다.
그리고 김훈은, 그런 작가다.
김훈 작가 산문집 출간 티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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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유튜브 – 김훈 작가 산문집 출간 티저 영상
관련 영상
김훈의 일산 작업실 – 한겨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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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라면을 끓이며” – KBS K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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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KBS 1라디오 주말 생방송 정보쇼에서 김봄과 남정미가 김훈의 『라면을 끓이며』를 소개하는 방송. 다양한 책을 추천하며 깊이 있는 서평을 전한다.
📚 『라면을 끓이며』 독서모임 자료 세트
1. 🔍 책 소개 및 키워드 정리
▪ 책 제목: 라면을 끓이며
▪ 작가: 김훈
▪ 출판사: 문학동네
▪ 출간일: 2015.09.30
▪ 장르: 산문집 (에세이)
📝 핵심 키워드
- 생존 / 밥벌이 / 일상 / 무력감 / 사회 / 죽음 / 감각 / 사물의 본질 / 글쓰기란 무엇인가 / 삶의 무게
- 김훈 특유의 건조하지만 밀도 높은 문장들, 일상의 사소함 속에 깃든 철학적 사유
2. ✍️ 발제문 요약 (구조 중심)
전체 구성: 5부 54편의 산문
부제 | 주요 주제 및 핵심 텍스트 |
---|---|
1부: 밥 | ‘라면’, ‘밥’, ‘광야를 달리는 말’, ‘국경’, ‘갯벌’ 등. → 생존의 본질, 일상의 반복,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철학 |
2부: 돈 | ‘세월호’, ‘소방관의 죽음’, ‘서민’, ‘라파엘의 집’ 등 → 돈을 둘러싼 사회의 모순, 약자에 대한 시선 |
3부: 몸 | ‘여자 1~7’, ‘손’, ‘발’, ‘평발’ → 육체와 감각, 존재의 개별성, 몸을 통한 인간 이해 |
4부: 길 | ‘길’, ‘고향’, ‘수박’, ‘바람’ → 시간과 장소, 뿌리와 회상의 의미 |
5부: 글 | ‘임꺽정’, ‘박경리’, ‘연어’ → 글쓰기, 문학적 유산, 김훈의 작가로서의 시선 정리 |
3. 💬 깊이 있는 질문 리스트 (토론용)
질문은 ‘사유형’, ‘공감형’, ‘개인회고형’으로 나눴어요. 모임의 성격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하세요.
🧠 사유형 질문 (생각을 확장하는 질문)
- 라면이라는 소재로 ‘삶의 균형’을 이야기한 작가의 문장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놓치는 ‘조화’의 순간은 어떤 게 있을까요?
- 책 전반에서 반복되는 ‘밥벌이’, ‘무력감’,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김훈에게 어떤 철학을 담고 있을까요?
- 김훈은 왜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까지 날카롭고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하시나요?
❤️ 공감형 질문 (느낌을 나누는 질문)
-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무엇이었나요? 그 문장이 어떤 감정을 건드렸는지도 함께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 책 속에서 내 경험과 겹치는 순간이 있었다면 어떤 장면이었나요?
- 작가가 묘사한 ‘밥에는 대책이 없다’는 문장, 공감하시나요?
🌱 개인회고형 질문 (자기성찰 유도)
- 이 책을 읽고 나서 ‘일상’이나 ‘생존’에 대한 태도가 조금 바뀐 부분이 있나요?
- 나만의 ‘라면의 기억’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주세요.
- 앞으로 글을 쓴다면, 나는 어떤 문장을 남기고 싶은가요?
4. 📌 밑줄 친 인상 깊은 문장 모음
참여자들이 각자 밑줄 그은 문장을 나누는 시간도 추천해요. 아래는 참고용으로 정리한 대표 문장들입니다.
“국물의 맛은 면에 스며들어야 하고, 면의 밀가루 맛은 국물 속으로 배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 삶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 관계의 조화
“밥에는 대책이 없다.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 인간 존재의 본질로서의 생존
“모든 죽음은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한다.”
→ 죽음이라는 절대적 고독에 대한 철학
“나는 나비들이 바람 속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았다. 죽어서 바람이 되어, 들판 저쪽으로 불어간다.”
→ 존재의 퇴장과 자연과의 동화
5. 👤 작가 소개 + 연결 콘텐츠
작가: 김훈
- 1948년생. 언론인 출신. 중년 이후 본격적으로 문단에 진입.
- 대표작: 『칼의 노래』, 『남한산성』, 『흑산』, 『하얼빈』
- 일상에 뿌리내린 사유, 감각적인 묘사, 단단하고 치밀한 문장이 특징
함께 보면 좋은 인터뷰
- [김훈 인터뷰 발췌]
“문학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의 문학관은 신념보다는 ‘현실’에 더 무게를 둔다.
연결 책 추천
- 『밥벌이의 지겨움』 – 라면을 끓이며에 포함된 초기 산문집
- 『남한산성』 – 김훈의 역사소설. 인간의 고뇌와 생존의 윤리
- 『죽음의 한 연구』 (유홍준, 철학적 관점에서 죽음을 성찰한 책)
6. 🧾 간단한 소감 카드 양식 (모임 후 기록용)
모임 끝나고 참여자들이 적어볼 수 있는 간단한 카드입니다.
질문 | 답변 (자유롭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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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 |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 |
책을 덮고 떠오른 내 삶의 한 장면 | |
다음에 읽고 싶은 비슷한 책은? | |
함께 읽어서 좋았던 순간은? |
7. 🍜 모임 분위기 아이디어
- 테마 다과: 진짜 라면을 끓여서 나눠 먹거나, 컵라면을 예쁜 그릇에 담아 분위기를 살려보세요.
- BGM: 라디오처럼 조용한 기타나 피아노 음악을 깔아놓으면 집중도가 올라가요.
- 소품: 오래된 냄비, 나무젓가락, 사기 그릇 등 일상의 질감을 담은 물건들로 책상 위를 꾸며도 좋아요.
- 플립차트 or 화이트보드: 서로 이야기한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며 보면서 토론하면 더 풍성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