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여전히 베르베르를 읽는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한국 독자에게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책은 ‘지적 자극을 주는 엔터테인먼트’로서, 그리고 때로는 철학적 사유의 자극제로서 기능해왔다.
『개미』를 통해 처음 그를 만났던 독자라면, 이후 『타나토노트』, 『나무』, 『뇌』, 『잠』 등에서 그가 끊임없이 던져온 질문—우리는 누구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퀸의 대각선』. 이 작품은 체스를 빌려 인간의 본질, 개인과 집단의 이념, 삶의 전략적 선택들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된 ‘지적 실험’이자, 동시에 무서우리만치 현실적인 이야기다.
1️⃣ 오토포비아 vs 안트로포포비아 – 외로움과 거리감의 스펙트럼

이야기는 11살 소녀 두 명으로부터 출발한다.
한 명은 혼자 있는 것이 공포인 아이(오토포비아), 다른 한 명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두려운 아이(안트로포포비아)다.
니콜과 모니카, 이 두 인물은 그 자체로 인간의 양극단적인 사회적 감수성을 상징한다.
누구는 타인 없이는 버틸 수 없고, 또 누구는 타인의 존재 자체가 고통이다. 베르베르는 이 아이들을 통해 묻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서로에게서 도망치고 싶어할까?
2️⃣ 체스, 게임 그 이상 – 세계관의 움직임

니콜은 집단의 힘을, 모니카는 개인의 능력을 신뢰한다.
체스는 그 철학이 그대로 구현되는 장치다. 니콜은 폰과 룩 같은 집단적 말로 싸우고, 모니카는 나이트와 퀸으로 단독 전투를 벌인다.
체스판은 이 세상을 비추는 은유의 거울이자,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의 무대다.
한 수를 두는 것이 곧 철학을 펼치는 일이 되고, 그 철학은 결국 삶을 바꾼다.
3️⃣ 천재성과 광기의 가느다란 경계

두 주인공 모두 놀라운 두뇌를 지녔다. 하지만 그 천재성은 종종 도덕의 선을 넘나든다.
니콜은 수백 마리의 양을 절벽으로 몰아넣고, 모니카는 경기에서 진 뒤 상대의 목을 조르려 한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확신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작가는 끊임없이 경고한다.
4️⃣ 집단과 개인 – 철학이 충돌할 때

니콜은 공동체 속에서 의미를 찾고, 모니카는 철저히 개인의 힘을 믿는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각자의 논리로 상대를 부정한다.
이 믿음의 충돌은 점차 체스를 넘어, 세계 질서와 국제 정치로 번져간다.
결국 그들의 체스는, 우리 모두가 끼어 있는 현실 세계의 대결판이 된다.
5️⃣ 복수 – 감정에서 신념으로

니콜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모니카에게, 모니카는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니콜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각자의 철학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선언, 존재의 근거를 입증하려는 투쟁에 가깝다.
결국 감정이 철학이 되고, 철학은 전략이 된다.
6️⃣ 백과사전 – 픽션 속의 또 다른 논픽션

이야기 곳곳에는 에드몽 웰즈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삽입되어 있다.
작가는 현실과 허구 사이에 또 하나의 현실을 끼워 넣음으로써, 허구가 허구 같지 않도록 만든다.
이순신, 9.11, 집단 압사 사고까지 연결되는 이 장치 덕분에, 독자는 더욱 깊이 빠져든다.
7️⃣ 독자의 자리 – 나의 세계관은 어디에 있나

읽는 내내, 나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나는 니콜처럼 군중 속에서 안정을 찾는가? 아니면 모니카처럼 독립성과 자율을 신봉하는가?
이 소설은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신념을 꺼내어 살펴보게 만든다.
그게 이 소설이 가진 힘이다.
8️⃣ 2권의 깊이 – 정치와 심리의 블렌딩

2권에 이르러, 이야기는 단순한 소녀들의 대결에서 벗어나 정치 스릴러로 확장된다.
MI5, IRS, 정보기관, 테러, 전쟁…
세계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여전히 체스처럼 정교하고 조용하지만, 그 파급력은 지구 전체를 삼킨다.
이 작품은 그야말로 체스를 통해 그려낸 인류사의 대서사시다.
9️⃣ 상처로 각인되는 신념의 결과

모니카는 한쪽 다리를, 니콜은 한쪽 눈을 잃는다.
이들은 서로에게 고통을 입히며 결국, 자신 또한 잃어간다.
그 믿음이 옳고 그름을 떠나, 작가는 말한다.
모든 확신은 상처를 남긴다.
🔟 마지막 체스 – 결말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인가

결국 두 사람은 다시 체스판 앞에 마주 앉는다.
그 장면은 무언가를 암시한다. 이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언제나 경쟁하고, 증명하려 하고, 다시 싸운다.
하지만 어쩌면, 함께 체스판에 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 마무리 – 『퀸의 대각선』이 남긴 질문
『퀸의 대각선』은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개인은 집단보다 강한가?
집단은 개인을 삼켜야만 유지되는가?
우리는 과연 공존할 수 있는가?
이 책을 덮는 순간, 당신도 아마 그 질문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게임은 끝났는가?”
아니. 우리는 지금도, 그 체스판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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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vs 집단, 니콜의 아버지 캐릭터 분석, 베르베르 소설에 대한 독서 토론 등 다양한 관점에서 풀어낸 솔직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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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의 대각선』으로 독서모임을 연다면
준비부터 진행까지, 깊이 있게
『퀸의 대각선』은 철학, 심리, 정치, 역사, 윤리까지 여러 갈래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다룬다는 건 각자의 관점을 통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으로 독서모임을 연다면, 조금 더 전략적으로 준비하고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실제 모임 기획부터 진행, 마무리까지 단계별로 현실적인 팁과 아이디어를 담았다.
🛠️ 1. 모임의 톤 & 방향 설정하기
『퀸의 대각선』은 독자마다 받아들이는 깊이나 관심 분야가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먼저 모임을 기획할 때는 이 모임이 어떤 분위기로 진행될지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 진지한 토론 중심으로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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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이념, 인간 본질, 철학, 정치, 체스의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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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발제문 → 소그룹 분할 토론 → 전체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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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참가자: 생각을 말로 풀어내는 데 익숙하거나 사유적인 대화를 즐기는 사람
✔️ 감상 중심의 편안한 대화로 꾸민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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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인상 깊은 장면, 인물, 감정선, 성장,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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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자유로운 발언 중심, 질문으로 유도, 경험과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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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참가자: 소설의 분위기나 메시지를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타입
포인트: 시작 전 사전 안내에서 “이 모임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짧게 소개해주면 좋다.
예: “이번 모임은 개인의 감정과 경험에 초점을 맞춰 편하게 이야기 나눠보는 자리입니다.”
🪪 2. 시작 전에 던지는 ‘가벼운’ 질문들
모임의 문을 여는 데 있어서 분위기를 가볍게 풀 수 있는 워밍업 질문은 매우 효과적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 특히 유용하다.
🎯 예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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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 뭐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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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떠오른 현실 속 인물이나 사건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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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과 모니카 중, 어느 쪽이 더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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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체스 말 중 하나라면? (이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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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 또는 장면은?
팁: 이 질문들을 종이에 뽑아서 뽑기 상자처럼 활용해도 좋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미리 질문을 던져도 좋다.
🧠 3. 깊이 있는 대화 유도를 위한 테마별 분할
이 책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어서, 대화가 넓고 얕아질 위험도 있다.
그래서 모임을 몇 개의 테마로 분할해서 진행하면 훨씬 깊이 있는 대화를 만들 수 있다.
📌 테마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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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 인간은 결국 경쟁적 존재인가, 협력적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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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대결: 자유와 통제,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작가는 누구의 손을 들어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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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윤리: 복수를 위한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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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의 구조적 상징성: 체스 말 각각이 가진 은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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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트라우마: 인물들의 행동은 과거에 의해 어떻게 결정되는가?
팁: 참가자 수가 많다면 조를 나누고, 조마다 하나의 테마를 맡아 이야기한 뒤 전체 공유하는 방식도 추천.
🧾 4. 진행자가 주의할 점 (사회자 역할 가이드)
진행자가 너무 발제를 주도하거나, 대답을 유도식으로 던지면 모임이 수업처럼 변하기 쉽다.
오히려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쪽으로 집중하는 것이 좋다.
✔️ 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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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침묵의 여유를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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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응을 보이며 적극적 경청 (끄덕이기, 메모하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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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하거나 막히는 흐름에선 “그건 흥미롭네요, 혹시 다른 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처럼 돌려주기
❌ 피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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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의 이야기만 지나치게 오래 듣거나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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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정답이 아니에요” 같은 판단적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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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주제 전환으로 흐름 끊기
팁: 간단한 타임 키퍼 앱이나 모래시계 등으로 발언 시간을 시각화하면 더 공정하고 편안한 분위기 연출 가능
📔 5. 기록과 정리는 ‘공유된 기억’이 된다
모임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오래 남는 독서모임은 대개, 기록과 나눔이 남는 경우다.
정리를 위한 수단은 꼭 거창할 필요 없다.
📸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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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 장 + 참가자들이 고른 인상 깊은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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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에 쓴 한 줄 감상들 모아 사진 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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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후 “기억에 남는 대화 한 마디”를 메시지로 나눠받아 한 장 이미지로 정리
이런 기록은 나중에 다시 같은 책을 읽게 되었을 때도, “그때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라는 추억으로 남는다.
또한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모임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 6. 응용 팁: 소품 & 공간 연출로 분위기 살리기
『퀸의 대각선』은 체스를 테마로 하고 있기에, 소품 하나만 잘 활용해도 몰입도가 높아진다.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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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세트를 테이블 가운데 두기 (실제로 두지 않아도 분위기 연출에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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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이름이 적힌 테이블 네임 카드 (예: “퀸 테이블”, “룩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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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 느낌의 종이 인쇄물 (에드몽 웰즈 풍의 인용문이나 ‘지식 카드’)
이런 작은 요소들이 책의 세계와 현실 공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징검다리가 되어준다.
💬 마무리 멘트 예시
마지막을 어떻게 닫느냐에 따라 모임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뻔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보다는, 대화를 정리해주는 한 마디가 남는 경우가 많다.
예시:
“오늘 이 모임이, 우리 각자 안에 있는 니콜과 모니카를 꺼내볼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책 속에서는 계속 게임이 이어지죠. 우리 삶에서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한 수씩 두고 있는 중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