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가영 에세이 『파타』 후기|내 안의 또 다른 나를 꺼내보다

유퀴즈에서 책 이야기를 꺼내던 문가영을 보고 처음 ‘파타’라는 제목을 검색하게 됐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글은 어떤 결을 가질까, 궁금함 반 기대 반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알게 됐다.
이 책은 문가영이 아닌, ‘파타’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꺼낸 속 이야기였다는 것을.

읽는 내내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어떤 문장 앞에서는 괜히 숨이 멎기도 했다.
익숙한 감정인데도 내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들이 이 책 안에는 단단하게 담겨 있었다.


표지부터 감정을 흔들다

문가영 산문집 『파타』의 붉은색 하드커버 표지 이미지
처음 마주한 ‘파타’의 표지는 강렬하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나를 마주보게 만드는 낯선 기묘함이 있다.

마주한 순간부터 시선이 멈췄다.
어딘가 익숙한 듯 낯선 분위기가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은 현실과 상상을 교차시키고,
파타라는 이름은 그 사이에 자신을 밀어넣는다.
이 책이 그저 예쁜 표지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는 건
굳이 펼치지 않아도 느껴졌다.


이 책이 기록이어야 했던 이유

문가영 산문집 『파타』의 뒷표지에 인쇄된 작가의 메시지와 책 소개 문구
“글을 쓰는 것, 즉 기록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 문가영의 기억과 마음을 겹겹이 덧입힌 기록물이다.

사라진 그녀를 떠올리기 위해,
그리고 잊지 않기 위해 남겨둔 단단한 문장들.
뒷표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이 책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오래 준비된 용기였는지 알 수 있다.
기록한다는 건 누군가를 다시 불러오는 일이고,
그 마음은 독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파타, ‘그것’을 바라보다

문가영 『파타』 34~35페이지, 파란 새를 바라보는 파타의 심정을 묘사한 본문
파타는 ‘파란 새’를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묻는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 다시 날 준비를 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파타가 마주한 건 작은 파란 새였다.
가만히 있지만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요하지만 그 안엔 떠날 준비가 담겨 있는 생명.
이 장면을 읽으면서 이상하게도 내 안에
오래 묻어뒀던 감정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직은 머물러 있어도 괜찮지만,
언젠가 나도 ‘그것’처럼 파란 날개를 펴야겠지.


다음엔, 더 사랑해야지

문가영 『파타』 113페이지, 친구와 생과 사랑에 대해 나누는 대화 장면
“다음엔 더 사랑해야지”라는 말. 그 문장은 누군가의 위로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미뤄두고 있는 걸까.
파타와 친구가 나눈 이 짧은 대화는
그 어떤 인생 조언보다 진심이었다.
“내 꿈은 모든 걸 사랑해버리는 거야.”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다음 삶이 아니라, 지금을 바꿔볼 수 있을지도.


익숙해진다는 건, 조금씩 멀어진다는 것

문가영 『파타』 114페이지, 이별에 익숙해지는 감정에 대한 짧은 글
문득 이 문장을 읽고 멈췄다. “나의 꿈은 모든 이별에 익숙해지는 거야…”라는 말이, 너무 조용히 스며든다.

어떤 이별은 예상할 수 있고,
어떤 이별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온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씩
익숙해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걸지도.
이 책은 그런 감정을 조용히,
아무 말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감정도 숨 쉬어야 하니까

문가영 『파타』 173페이지, 감정을 발효에 비유한 글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 곧장 터뜨리지 않고 유예하는 마음. 이걸 ‘발효’라고 부른다니, 문득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단숨에 표현되지 않는 마음,
말로 꺼낼 수 없던 감정.
그걸 꾹 눌러놓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터질 듯 무겁게 피어오르기도 한다.
문가영은 그것을 ‘발효’라고 말한다.
참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감정이 숨 쉬는 방식이라고.


문가영이라는 배우를 알고 있었지만,
『파타』를 읽고 나니 이 사람의 언어와 마음을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멋지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조심스럽게 꺼낸 문장들이
오히려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오래 남는 문장들이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남기기 위해 쓴 글이란 게 느껴졌달까.

나도 언젠가
내 안의 ‘파타’에게 말을 걸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이 책이 곁에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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