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을 다시 읽었다.
그때는 지나쳤던 문장이,
이번엔 마음에 걸려 오래 붙잡혔다.
가까워서 더 복잡했던 관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간.
그걸 문장으로 묶어낸 고닉의 방식은
여전히 건조했고, 그래서 더 설득력 있었다.
모녀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들.
이 책은 그 경계를 조용히 짚고 지나간다.
다시 꺼내 든 책

여러 번 덮고 다시 펼친 흔적이 보인다.
이 책은 그렇게 읽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땐 잘 모르겠던 문장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달라진다.
『끝나지 않은 일』은 그런 책이다.
반복해서 읽게 되고,
마음에 남는 문장은 다시 밑줄을 긋게 된다.
끝까지 다다를 수 없는 관계

고닉이 바라본 인간 관계의 본질은 이렇게나 명료했다.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인간 관계는 결국 성과 침묵으로 귀결된다고 쓴다.
고닉은 이 문장을 빌려
어떤 관계도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짚는다.
담담하게 쓰였지만,
읽고 나면 묘한 씁쓸함이 오래 남는다.
문장으로는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것

한 문장이 전부를 말해주진 않지만,
고닉은 그 불완전한 문장을 믿는다.
고닉은 “언어로 추측해 사냥할 수 있는 극단적인 심리 상태”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책을 펴고,
다시 같은 구절에 머문다.
말이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문장 속에서 조금씩 중심을 찾아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외로움에 구조가 있다면

고닉은 보호받는 쪽보다
방어하며 살아온 쪽을 더 깊이 이해한다.
남자들은 설명하지 않고 떠났다.
여자는 말없이 그 자리에 남았다.
고닉은 그걸 구조로 본다.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거리감이라고.
이 문장을 읽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언어로 살아내는 사람

말로는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고닉은 여전히 말하는 쪽을 선택한다.
세상이 말하는 방식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고닉은 끝까지 언어를 믿는다.
감정이 아니라 문장으로 기록하고,
판단이 아니라 응시로 남기려 한다.
이 장면을 읽고,
‘끝나지 않은 일’이라는 제목이 다시 떠올랐다.
읽고 나면 한동안 말을 아끼게 된다.
어떤 문장은 설명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아서.
『끝나지 않은 일』은 그런 책이었다.
짧은 문장에 오래 머물게 만들고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게 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생각은 한참 뒤에야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