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일』 독서 후기|모녀의 거리와 고독을 응시하다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을 다시 읽었다.
그때는 지나쳤던 문장이,
이번엔 마음에 걸려 오래 붙잡혔다.

가까워서 더 복잡했던 관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시간.
그걸 문장으로 묶어낸 고닉의 방식은
여전히 건조했고, 그래서 더 설득력 있었다.

모녀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들.
이 책은 그 경계를 조용히 짚고 지나간다.


다시 꺼내 든 책

비비언 고닉 『끝나지 않은 일』 한국어판 책 표지
포스트잇 꽂힌 책,
여러 번 덮고 다시 펼친 흔적이 보인다.
이 책은 그렇게 읽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땐 잘 모르겠던 문장들이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면 달라진다.
『끝나지 않은 일』은 그런 책이다.

반복해서 읽게 되고,
마음에 남는 문장은 다시 밑줄을 긋게 된다.


끝까지 다다를 수 없는 관계

끝나지 않은 일 69페이지에서 밑줄 그어진 인상적인 문장
“성행위와 침묵으로 끝나고 있었다.”
고닉이 바라본 인간 관계의 본질은 이렇게나 명료했다.

플로베르의 소설에서,
인간 관계는 결국 성과 침묵으로 귀결된다고 쓴다.

고닉은 이 문장을 빌려
어떤 관계도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는 점을 짚는다.

담담하게 쓰였지만,
읽고 나면 묘한 씁쓸함이 오래 남는다.


문장으로는 끝내 다다를 수 없는 것

비비언 고닉 책 93페이지, 보이엘 인용 부분
보엔은 어떤 말로도 응축할 수 없는 얼굴을 그렸다.
한 문장이 전부를 말해주진 않지만,
고닉은 그 불완전한 문장을 믿는다.

고닉은 “언어로 추측해 사냥할 수 있는 극단적인 심리 상태”에 대해 말한다.

그럼에도 책을 펴고,
다시 같은 구절에 머문다.

말이 부족하다는 걸 알지만,
문장 속에서 조금씩 중심을 찾아가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외로움에 구조가 있다면

끝나지 않은 일 144페이지에 있는 여성과 외로움 관련 문단
“남자든 그건 상관없습니다.”
고닉은 보호받는 쪽보다
방어하며 살아온 쪽을 더 깊이 이해한다.

남자들은 설명하지 않고 떠났다.
여자는 말없이 그 자리에 남았다.

고닉은 그걸 구조로 본다.
개인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거리감이라고.

이 문장을 읽고 한참 멍하니 있었다.


언어로 살아내는 사람

고닉이 극장에서 경험한 장면을 다룬 『끝나지 않은 일』 190페이지
“죽어도 싸다고 웃어대고 있었다.”
말로는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는 세상에서
고닉은 여전히 말하는 쪽을 선택한다.

세상이 말하는 방식은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고닉은 끝까지 언어를 믿는다.

감정이 아니라 문장으로 기록하고,
판단이 아니라 응시로 남기려 한다.

이 장면을 읽고,
‘끝나지 않은 일’이라는 제목이 다시 떠올랐다.


읽고 나면 한동안 말을 아끼게 된다.
어떤 문장은 설명할수록 멀어지는 것 같아서.

『끝나지 않은 일』은 그런 책이었다.
짧은 문장에 오래 머물게 만들고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가게 한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생각은 한참 뒤에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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